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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15년 동안 일한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아내에게 직장동료가 쏘아올린 공

같은 직장에서 만나 한 이불을 덮고 지낸지도 7년이 지났다. 그리고 올해로 아내가 한 곳에서 일한 세월이 1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20년이 훌쩍 넘는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상황을 만났는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현재 사회는 20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기엔 아직 사회는 성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내의 직장생활을 가끔 듣다 보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과 사람의 민낯을 보게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런 이야기가 더 잘 기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5년 동안 지금의 직장에서 별의별 일들을 겪었지만 아내와 내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회사는 그저 회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정책과 제도들 속에 울고 웃었던 지난날에 회사가 주는 이미지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의 초창기 멤버로 참여하여 현재 근속연수 서열 5위인 아내이지만 퇴사를 결정하고 보고 절차를 통해 보고를 해도 '무슨 일이야?'조차 물어보기는커녕 아무런 피드백도 없는 회사라면 말 다하지 않았을까? 속상해 있을 법도 한데 아내는 그저 나에게 미소만 남긴다. 20대에 입사하여 청춘을 바치고, 회사가 요구하는 충성과 헌신을 실천한 구성원에게 한마디 말조차 않는다면 속이 상하고 울화통이 터져도 터지고 남았을 텐데, 아내의 마음은 모르지만 남편인 내가 너무나 안타깝다.

 

아내는 회사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는지 회사보다는 10년 전 혼자서 시작한 프로젝트를 현재 6명으로 10년 이상 유지하고 애정을 쏟은 일에 더 미련을 보이는 듯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폰의 언어를 담당하고, 해당 언어의 DB와 시스템 그리고 적어도 5년 이상 함께 일한 팀원들을 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내의 발길을 힘들게 한다. 전 세계에 판매되는 폰의 언어를 6명이서 담당하는 특수한 업무에 때마침 1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하는 이슈가 발생하면서 불안해 하는 팀원들이 아내의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6년 전 아들을 출산한 후로는 술도 좋아하는 아내가 회식도 기피하고, 시대적인 흐름도 회식을 기피하는 지금, 팀원들이 몇 주전부터 회식 날짜를 잡았다. 

 

그 회식의 의미를 모를리 없는 아내지만 팀원과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기도 해야 하기에 참석을 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게 눈이 새 빨개져 집에 돌아온 아내를 아무 말도 없이 안아 주었다. 외강내유의 여장부인 아내이지만 남편인 나는 안다.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함께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열정과 정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해당 프로젝트를 유지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도 안다. 그래서 빨개진 눈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위해 내 입에서 떠나는 몇 마디 말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함께한 동료들이 손수 적어준 편지>
<명품은 갖다 버려라, 명품을 살 바엔 전자제품을 사겠다는 아내를 알고 준비한 팀원분들의 선물>

아내가 떠날 때 말 한마디를 떠나서 함께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동료분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옆에 있어주고, 나 역시 사회생활을 했다 하면 한 사람인데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팀장의 모습을 갖춘 아내이기에 팀원분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